THE MOMENTS WE KEEP — 65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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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STORIES

ARGENTRIUM · STORY 19
오래 쉬었던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바라본다. 손은 무릎 위에 둔 미디엄 와이드.

1 / 3 · 끝까지 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한 날.

다시, 첫 음

끝까지 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한 날.

피아노 위에는 화병과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건반 뚜껑을 열려면 아무것도 치울 필요가 없었는데, 그녀는 오랫동안 그것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책을 제자리에 꽂다가 의자에 앉았다. 잠깐 쉬려고 앉은 것이었다.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보니 건반이 생각보다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한 곡을 끝까지 친 날은 기억나지 않았다. 무엇을 쳤는지도, 누구에게 들려주었는지도. 손가락을 펴 보았다. 예전보다 둔해 보였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블라우스 깃 사이로 작은 십자가가 내려와 있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체인이 조금 움직였다. 그녀는 오른손을 건반 위에 놓았다. 알고 있는 곡의 첫 음을 찾으려다가, 그냥 손끝에 닿은 흰 건반을 눌렀다.

소리는 예상보다 또렷했다. 방 안에는 그 음을 가로막는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다른 음을 눌러볼까. 생각만 하고 잠깐 기다렸다. 소리가 끝나는 시간을 끝까지 듣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잘못 친 음이라는 말은 한 곡을 치고 있을 때나 필요한 말이었다.

그녀는 혼자 조금 웃었다. 오늘 누군가에게 들려줄 연주는 없었고, 연습 시간을 채울 필요도 없었다. 그저 피아노 앞에 앉았고 소리를 하나 냈다.

나중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뚜껑을 닫지 않았다. 내일 꼭 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다음번에 앉을 자리를, 오늘보다 조금 가까이 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기록되는 금 · argent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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